이후의 Wishbone
Wishbone은 NFL에서도 시도되었다. 1981년 New Orleans Saints의 QB Archie Manning은 과거 Ole Miss 대학 시절 런 능력을 갖췄던 쿼터백으로 wishbone option football을 시도했다. (그는 그 유명한 Payton Manning과 Eli Manning의 아버지이다) 그렇지만 당시 32살의 Manning은 과거의 운동능력이 아니었고, 상대편인 New York Giants의 (당시) 루키 LB Lawrence Taylor가 그를 태클하여 땅에 처박은 이후로 다시 option play를 쓰지 않았다. (1)
대학 수준에서는 미식축구 명문 대학들이 꾸준히 Wishbone을 사용을 하여 영광을 누렸다. 그렇지만 90년대 이후에는 이 공격 작전은 쇠락하였고, 그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유명한 감독인 Lou Holtz는 그 이유가 리쿠르팅 때문이라고 하였다. (후에 Holtz는 자기가 커리어 동안 가장 잘못한 것이 option play를 버린 것인데, 그 option play는 막을 수 없다고 하였다.)
Option play를 하는 학교에서 리쿠르팅을 하려고 가정한다면, 패스 능력이 있는 QB은 오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option play에서는 패스가 주요한 루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뛰어난 left tackle도 오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충분한 pass protection 을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뛰어난 RB도 오지 않을 것이다. 그가 충분히 주목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최상위권을 리크루트 할 수 없다. (1)
그래서 리쿠르팅과 큰 관련이 없는 Air Force team 감독 Fisher DeBerry 정도만 wishbone 과 flexbone hybrid를 오래 운영했었다. (96년 기준)
Air Force team은 wishbone의 변형인 midline option으로 주전 OL이 빠진 와중에도 Notre Dame을 상대로 이긴 적이 있는데, 총 355 공격 야드를 얻었다. 그중에 런으로 304야드를 얻었다. QB Beau Morgan은 직접 23번 캐리, 183야드를 얻었다. (Midline option 은 QB가 blocking back을 따라서 가운데를 직진으로 공략하는 방식이다.)
Option play를 하기 위해서 Air Force team은 매일같이 Ride and Decide라는 연습을 해서, 어떤 위급한 상황에서도 QB이 판단하고 pitch 할 수 있도록 연습하였다. Notre Dame 수비는 누가 공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대응할 수 없었다.
<Ride and decide drill>
https://youtu.be/AylgwrxjB_0?si=GT68pRIzIu2a7x81
<Flexbone formation with midline option>
https://youtu.be/yo38q6SDFuw?si=KOtsrH9N9YrWI-vn
지금까지 소개한 특징들 덕분에 일부 대학과 고등학교 수준에서는 아직도 Wishbone을 사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가장 큰 단점은 바로 QB에 있다. 패스 능력이 다소 부족한 QB을 가지고도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한 강점이지만 문제가 되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QB이 태클에 너무 많이 노출된다는 것이다. Wishbone도 그렇고 여기서 변형이 된 midline option도 그렇고 QB이 ball carrier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부상의 위험이 너무 높다.
두 번째는 QB의 판단이 매우 중요하다. 앞서 언급했던 Texas Longhorns의 경우만 보더라도 전반적인 능력이 더 높은 QB이라고 할지라도 option key 수비수를 읽고 판단할 능력이 없다면 이 공격 형태는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Air Force에서도 Ride and decide drill을 무수히 많이 하는 것이다.
<위시본을 막는 법. Urban Meyer: https://youtu.be/jBcuJHacGLU?si=xOFjmwibK-hqGj8U>
수비는 안에서 바깥으로 막는다. FB을 먼저 막고 QB을 막고 Pitch를 막는다. Cover2가 패스에 좋은 수비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CB을 flat zone에 둘 수 있어 Triple option을 막기 위해 나왔다. 언제든 수비는 런 그리고 안쪽부터 막아야 한다. 막기 위한 작전도 중요하지만, 여러 옵션을 놓치지 않을 집중력 (eye discipline으로 표현)도 중요하다.
결국 수비는 정직하고 보수적으로 경기를 해야 한다. 공격이 원하는 바가 수비의 이런 모습이지만 결국 수비가 이기는 방법은 아이러니하게 정직하고 보수적으로 경기를 하는 것이다. 규율이 잡힌, 다시 말하면 군기가 잡히고 개인의 능력이 뛰어난 수비가 필요하다.
인사이드를 틀어막아 FB을 무력화하고 상대편이 옵션을 하게 만든다. QB이 option key로 판단하는 수비수들은 우왕좌왕하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DE가 QB을 막기로 했으면 QB이 들고뛸지 pitch를 할지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QB을 막는다. QB이 pitch를 하더라도 내 뒤의 수비가 pitch를 받은 선수를 막아줄 것이다. 결국 미식축구는 전진하지 못하고 옆으로 흐르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Urban Meyer도 런 그리고 안쪽을 막으라고 강조를 한 것이다.
Texas 대학교의 Wishbone 성공 이후의 이야기
미식축구는 copycat 리그이다. 하나가 통한다고 하면 다들 따라 하고 적용한다. 1970년대 Texas에서 Wishbone이 성공한 후, Emory Bellard에게 Wishbone을 배우고자 하는 코치들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이전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Wishbone은 power-based attack이 아니다. 즉, OL이 hole을 만들기 위해 power drive block을 하지 않는다. 대신에 정교한 블락 스킴을 통해서 작전을 수행한다. 예를 들어 예상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와(pull이나 trap) 단순히 수비의 진로를 막던지, 안쪽으로 파고들어(slanted inside) 수비수의 몸 절반만 공략하여 블락을 하든지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블락하지 않은 수비수를 두 명 남겨두어 QB이 이 선수들의 움직임을 읽고 반응하게 만드는 것이 Wishbone을 더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수비들은 새로운 작전을 사용하지 못하고 보수적으로 플레이를 해야 했다. 그래야 모든 option 가능성들을 적당히 막을 수 있었다.
또한 Wishbone을 상대로 블리츠를 하기에는 어려웠다. 왜냐하면 QB을 공략하는 첫 번째 수준 (first level of containment)은 Wishbone에서 쉽게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QB에게 맡긴 수비수 두 명을 막지 않고 그만큼 OL을 다른 블락에 투입할 수 있었고 여차하면 FB도 pass protection에 투입할 수도 있었다.
Texas에서 시작한 Wishbone은 전통적인 경쟁자인 Alabama도 배워서 도입하였다. 그렇지만 Wishbone의 가장 큰 변화는 또 다른 전통적인 경쟁자인 Oklahoma에서 발생했다.
1967년 감독 Chuck Fairbanks와 offensive assistant Barry Switzer는 two-back Houston Veer concept을 사용했는데, Texas의 Wishbone에 진절머리가 나고 있었다. 당시 Oklahoma는 veer 작전을 수행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OC인 Switzer는 Sooners도 Wishbone을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Sooners의 선수 구성이 Texas 보다 훨씬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Sooners는 인종 상관없이 recruit을 했지만, 당시 69년 Texas는 마지막 all-white national championship team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Sooners에는 뛰어난 흑인 선수들이 많았다. 실제로는 뛰어는 백인 선수도 많았다. 그들은 훨씬 빠른 스피드로 수비수들을 압도할 수 있었다.
그래서 1970 시즌에 Switzer는 DC인 Larry Lacewell과 함께 감독인 Fairbanks에게 Wishbone play를 도입하자고 설득하기로 하였다. 비록 그 해에 Texas에게 졌지만, 가능성을 보았고 다음 해에는 Texas에게 복수를 할 수 있었다.
71년 시즌에 Sooners는 게임 당 평균 러시 472.4 야드라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작성했다. 73년 Switzer가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18 시즌 동안 오직 33번만 지고 총 3번의 National Champ의 기록을 세웠다. 즉, Wishbone의 대표가 70년대 Texas에서 80년대 Oklahoma로 넘어갔다.
(Wishbone으로 성공한 Sooners를 있게 한 것은, 라이벌 팀 Texas Longhorns의 코치 Emory Bellard와 감독인 Darrell Royal이 라이벌
임에도 불구하고 전수해 주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중요한 코치는 Lou Holtz이다. 그는 어느 팀을 가던지 항상 option football을 가장 중요한 작전으로 삼았다. Holtz가 이끄는 Notre Dame은 1989년 Orange Bowl에서 Colorado를 이기는데, 1990년 바로 다음 해에 두 팀은 다시 만나는데 I-formation 과 wishbone을 접목한 Colorado가 Notre Dame에게 설욕을 한다. 이때가 Colorado의 유일한 National Champ 기록이다.
당시 Colorado의 감독은 Bill McCartney, OC는 Gerry DiNardo였다. DiNardo는 I-bone, QB 뒤에 일직선으로 두 명의 RB을 두고, 한 명의 RB은 약간 사이드 쪽으로 벌려서 (offset to the side) 위치시키는 formation에서 option play를 하였다.
<1991년 1월 1일 orange bowl: Colorado는 I-bone, Notre Dame 은 wishbone을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참조
(1) Sports Illustrated Blood, Sweat and Chalk. The Ultimate Football Playbook. By Tim Lay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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